반전을 노리는 무한도전, 그랜저 디젤

  • 입력 2014.07.03 01:03
  • 기자명 김흥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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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차 공세가 거세고 디젤 세단이 강세고 하는 이야기, 이제는 지겹다. 핑계보다는 대안을 찾아야 할 때가 지나도 한 참 지났다. 대안을 찾는데 소홀했던 대가는 컸다. 수입차 시장 점유율이 가파르게 상승했고 올해 전망치는 14%다.

상대적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곳은 현대차와 기아차. 2008년 71.6%였던 시장 점유율이 지난 해 68.7%, 6월에는 65%대로 추락했다. 쉐보레, 르노삼성차, 쌍용차가 선전을 한 탓도 있다.

다행스럽게 현대차는 호시절을 잊고 현실, 그리고 미래에 대비하기 시작했다. 누가 뭐래도 제네시스와 쏘나타는 자동차가 가져야 할 감각, 감성, 그리고 한창 부르짖고 있는 본질에 충실한 역작이다.

주력하고 있는 이 본질들이 다른 세그먼트로 전이되기만 해도 어떤 상대와도 경쟁력은 충분하다. 남아있는 숙제는 어떤 다양성을 갖추는 가에 있다. 비 가솔린, 그러니까 하이브리드 타입 또는 전기차 혹은 디젤로 라인업을 확장하는 일이 급하다. 지난 부산모터쇼에서 세계 최초로 공개됐고 본격적인 판매를 시작한 그랜저 디젤이 반가운 이유다.

▲ 사진=카리포터 임재범 기자

벌써 1800대, 성공적인 초기 반응=2일, 현대차는 인천 송도에 있는 잭 리클라우스 GC에서 그랜저 디젤 미디어 시승 행사를 가졌다. 지난 달 9일 시작한 사전 예약대수가 1800대를 넘었고 덕분에 그랜저 전체 판매량이 16% 늘었다는 자랑도 했다.

기아차 프라이드, 현대차 쏘나타 등 간헐적으로 선 보인 국산 디젤은 실적이 초라했다. 몇 몇은 사라졌고 실적으로 내세우기 부끄러운 기록을 갖고 있다. 그랜저 디젤에 대한 초기 시장 반응을 고무적으로 볼 수 있는 건 이런 과거 때문이다.

저변을 늘리는데도 기여를 했다. 현대차는 40대 중반 이상 선호도가 뚜렷했던 그랜저의 타깃이 30대로 내려왔다는 자체 분석을 내놨다. 여기에다 그랜저 신규 계약자의 20%가 디젤을 선택했다고 한다.

 사진=김흥식 기자

디자인, 가벼운 변화로 차별화=기본적으로 가솔린과 디젤 모델은 뚜렷한 차이가 없다. 외관을 세심하게 살펴보면 2015년 형이 나오면서 범퍼 디자인이 미세하게 바뀐 것 정도다.

전장도 기존 모델보다10mm늘어났다. 육안으로는 구분하기가 불가능했지만 범퍼 디자인이 변경된 것에 그치지 않는다. 따라서 전폭(1860mm), 전고(1470mm), 휠베이스(2845mm)에는 아무 변화가 없다.

가솔린 모델과 뚜렷하게 구별할 수 있는 건 트렁크 도어에 또렷하게 자리를 잡은 ‘220 e-VGT’ 앰블럼 뿐이다. 실내도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부분을 빼면 다르지 않다. 그랜저 2열의 무릎공간이 이렇게 넓었다는 점이다.

가솔린 세단에 탑재된 고급 사양들은 대거 퇴출됐다. 전자제어서스펜션(ESC), 어드밴스드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과 같이 주행 안전 및 편의를 돕는 사양은 선택할 수 없다. 어라운드 뷰 모니터가 포함되는 AVM 패키지, 스타일링 패키지, 프리미엄 패키지도 선택품목에서 제외가 됐다.

시승모델은 와이드 파노라마 선루프, 내비게이션 패키지, 그리고 드라이빙 어시스트 패키지Ⅱ가 적용된 3494만원짜리 프리미엄 트림. 그래도 충분한 고급감을 맛보고 싶은 수요층이 있다고 보면 아쉬운 부분이다.

 사진=김흥식 기자

완벽한 정숙성, 때로는 거칠게=그랜저 디젤에 탑재된 2.2리터 R엔진, 싼타페와 맥스크루즈와 같은 파워트레인이다. 최고출력은 202마력(ps), 최대토크 45.0kg·m의 동력성능을 갖고 있고 가장 중요한 연비는 14.0km/ℓ다.
세그먼트로 보면 국산 세단 가운데 그랜저 디젤의 비교 모델은 딱히 없다. 184마력의 최고 출력과 38.8kg.m의 최대 토크를 가진 BMW 520d와 비교 하면 출력과 토크는 앞서지만 연비는 16.9km/l에 비해 열세다.

다행스러운 것은 520d가 3490만원인 그랜저 디젤 프리미엄보다 2800만원이나 비싼 6290만원이라는 점이다. 엄청난 가격의 차이는 그랜저 디젤이 어떤 퍼포먼스를 보여주느냐에 따라 있으나 마나, 또는 대단히 의미가 있는 가치가 될 수도 있다. 독자의 몫이다.

시승은 잭 니클라우스GC를 출발, 송도 스트릿 서킷을 한 바퀴 돌고 인천 문학터널과 제2경인고속도로,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제3경인 고속화도로를 타고 인천대교를 거쳐 영종도 을왕리 해수욕장 인근을 돌아오는 160km 남짓한 코스에서 진행됐다.

 사진=김흥식 기자

시원스럽게 달리다가도 정체 때문에 제대로 속력을 내지 못하는 구간도 간혹 만났다. 가장 놀라웠던 점은 정숙성이다. 믿거나 말거나 가솔린과 특별한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현대차는 “가장 신경을 썼던 부분이다. 고급 흡차음재로 디테일한 마감을 했고 엔진의 진동을 최소화하기 위한 마운팅, 외부소음의 실내 유입을 차단하기 위한 신소재가 대거 적용됐다”고 설명했다.

어떤 수입 디젤 세단과 비교해도 정숙성은 압도할만한 수준을 과시했다. 가솔린 대비 월등한 출력과 토크로 발휘되는 순발력도 만족스럽다. 2.2엔진에서 기대되는 파워보다 감각적인 힘을 보여준다.

컴포트, 에코모드에서의 주행감은 밋밋하다. 약간은 떠 있는 듯, 지나치게 가볍고 부드럽다. 박진감은 찾아보기 힘들다. 코너에서는 후미의 가벼움이 차체의 쏠림과 스티어를 더욱 강하게 위협했다.

그러나 스포츠 모드로 전환을 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스티어링과 가속페달에 확실한 무게감이 실리고 배기음, 서스펜션의 반응도 거칠어진다. 확실하고 재미있는 운전의 묘미를 전해 준다.

 사진=김흥식 기자

반전의 기회를 잡기 위한 도전=하지만 연비에 대한 손실은 감수해야 한다. 영종도로 가는 길, 일상적으로 차분하게 운전을 한 동승자는 17.0km/ℓ를 기록했지만 스포츠 모드로 냅다 달려 되돌아 왔을 때의 연비는 10km/ℓ를 간신히 넘겼기 때문이다.

디젤 열풍은 수입차에 쏠려있는 기이한 현상이기도 하다. 엑센트와 아반떼 디젤 같은 꽤 좋은 상품성을 가진 모델들이 앞서 있었지만 경쟁은 꿈도 꾸지 못했다. 반전을 기대하며 그랜저가 국산 디젤 세단의 자존심을 살려 주기 위한 무한도전을 시작했다고 보는 이유다.

그랜저 디젤이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의 찰진 맛을 따라잡았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러나 정숙성, 승차감은 그 수준을 능가했다. 이런 점이 강조되고 부각된다면 굳이 3000만원을 더 주고 수입 디젤을 살 이유는 줄어들 것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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