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순해 졌을 뿐 정체성이 모호한 모하비

  • 입력 2016.02.23 17:28
  • 기자명 김흥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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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출한 자동차 디자이너 피터 슈라이어가 기아차로 자리를 옮긴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쉽게 이해되지 않는 일대 사건이었다. 논란이 있지만, 아우디 월터 드 실바, BMW 크리스 뱅글과 함께 세계 3대 자동차 디자이너로 불리는 그와 기아차는 속된 말로 급이 달랐다.

사정이 어찌 됐든 당시 정의선 기아차 사장의 삼고초려가 그를 움직이게 했고 기대했던 대로 피터 슈라이어는 제 몫 이상을 해냈다. 2006년부터 지금까지 10년간 기아차는 물론 현대차까지 디자인에 대한 개념을 송두리째 바꿔버렸다. 즉각적이지는 않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현대차와 기아차는 만성적인 다른 차 카피 논란에서 벗어났고 독창성도 완성해 냈다.

오히려 유수의 모델들이 현대차와 기아차를 모방한 것이 분명해 보이는 일까지 벌어졌다. 모하비는 피터 슈라이어 사장의 첫 작품이다. 전체 디자인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지만, 측면의 독특한 몰딩과 가니쉬는 그의 손에서 나왔다. 2008년 모하비 출시 행사에서 “검정 모하비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고 했던 것이 기억난다.

그렇게 8년의 세월이 흐르고 그때 그 모습 거의 그대로의 모하비가 지난 16일 출시됐다. 지난해 8월 생산을 중단하고 다시 6개월 만에 모습을 드러냈지만 재킷과 속 옷을 갈아입은 정도의 변화다. 부분변경 모델에 대해서는 실망도 있지만, 모하비라 용서가 된다는 상반된 평가다.

 

정통 SUV의 맛에 더해진 고급스러움

모하비는 멋진 차가 아니다. 외관은 투박하고 세련미도 없다. 일반적인 SUV들이 세단에 가까운 디자인에 치우쳐 있는 것과는 정 반대다. 프레임 보디, 후륜구동에 정통 SUV를 지향하는 차종답게 부분변경 모하비는 외관의 전체적인 틀을 그대로 뒀다. 박스형 보디의 아랫부분을 감싸고 있는 범퍼와 사이드 스커트와 스키드 플레이트를 두껍게 만들고 그릴의 패턴도 강한 느낌으로 변경했다.

전면부는 여기에 LED 주간전조등과 안개등 주변을 메쉬 패턴의 가니쉬로 마감해 고급스러운 맛을 살렸다. 이전 모델에서 상단 그릴부와 완전히 분리됐던 앞쪽 범퍼는 그릴 쪽으로 강하게 치켜 올라갔고 중앙 쪽에 에어 인테이크 홀을 만들어 놨다. 측면의 변화는 사이드미러와 휠에 크롬이 많이 사용된 것, 후면은 범퍼와 스키드 플레이트를 변경하고 추가한 정도다. 

 

외관 변화의 핵심은 오프로드 주행에서 차체를 보호하고 이를 통해 정통 SUV의 인상을 더욱 강조한 것이다. 많은 변화는 아니지만, 그동안 열광적인 모하비 마니아들이 요구해왔던 개선 사항들을 챙겨놨다. 실내에는 제법 큰 변화들이 있다. 운전대의 형상이 바뀌면서 리모트 컨트롤의 배치와 배열이 달라졌고 버튼은 상하 스크롤 방식으로 변경됐다.

센터페시아의 버튼 디자인과 배열, 공조장치도 버튼이 아닌 다이얼로 교체됐다. 시트의 색채와 소재는 다양하고 고급스러워졌다. 새틴 크롬과 하이그로시가 운전대, 센터 콘솔, 대시보드 등의 내장재로 사용됐다. 여기에 퀼팅 나파가죽 시트와 2.2인치로 커진 슈퍼비전 클러스터, 2가지 색상의 우드 그레인으로 취향에 따른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차체 크기에는 변화가 없다. 기존 모하비의 전장이 4880mm(범퍼가드 포함)에서 4930mm로 변경된 것을 빼면 전폭(1915mm)과 전고(1810mm), 축간거리(2895mm)도 같다.

 

SCR로 대응한 유로6, 정숙성 더해져

동력장치는 기존과 같다. 3.0리터 V6 S2 3.0 디젤 엔진을 탑재했고 여기에서 나오는 성능 제원도 같다. 최고출력은 260마력, 최대토크는 57.1kgf·m, 복합연비 10.7Km/ℓ(2WD)로 작은 수치 하나 다르지 않다. 요소수를 활용해 질소산화물과 미세먼지를 걸러내는 SCR(Selective Catalytic Reduction) 방식의 배출가스 저감장치가 추가된 정도다.

그런데 질감이 다르다. 무엇보다 출발하고 저속에서 속도를 높여나가는 맛이 이전과 다르다. 확실하게 빨라진 반응의 비결은 저중속 토크가 높아진 덕분이다. 1500rpm대의 저중속 토크를 기존 46kgf·m에서 57.1kgf·m으로 24.1%나 높이고, 80km/h에서 120km/h로 속도가 올라가는 데 걸리는 시간을 기존 26.4초에서 20.8초로 단축했다는 것이 기아차 설명이다.

저중속 토크를 올리기는 어렵지 않았겠지만, 고속에서 가속력을 높이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덕분에 2125kg이나 되는 거구가 쉽고 부드럽게 움직이고 게다가 민첩하다. 이전 모하비가 여유 있는 힘을 제대로 쓰는 기술이 부족했던 반면, 토크 그래프를 적절하게 튜닝하면서 전혀 다른 주행 질감을 만들어 냈다.

 

또 하나, 조용해졌다. 정지해 있을 때 저속에서 거슬렸던 엔진의 진동 소음이 눈에 띄게 잦아들었고 빠른 속도로 달릴 때의 풍절음도 개선된 점이 확실하게 느껴진다. 섀시의 구성품 가운데 기아차가 가장 많이 공을 들인 것이 서스펜션이다. 쇽업 소버를 튜닝하고 전륜 서스펜션에 유압식 리바운드 스프링을 추가했다.

그러나 고속으로 들어가고 빠져나오는 코너링에서의 롤링은 여전했다. 서스펜션이 SUV와 어울리지 않게 부드러운 쪽으로 튜닝된 탓이다. 적당히 거칠고 까다로웠던 모하비 특유의 맛은 이래서 이전보다 덜하다. 정해진 속도를 지키고 차분하게 달리는 취향이라면 만족스럽겠지만, 바뀐 주행 질감에는 호불호가 갈릴 듯 하다.

새로 적용된 안전 및 편의사양도 만족스럽다. 후측방 경보시스템, 차선이탈 경보 시스템, 전방 추돌 경보 시스템, 하이빔 어시스트, 어라운드 뷰 모니터일 시스템까지 화려한 사양들이 적용됐다. 시승차는 상시 사륜구동 시스템이 적용된 최상급 트림인 프레스티지다.

 

<총평> 기아차가 밝힌 더 뉴 모하비의 출시 전 사전 계약 대수는 4500대, 지금은 6500대로 늘었다. 사전 계약 이벤트 없이 올린 실적이라고 자랑하고 있지만 6개월이라는 단종 기간 누적된 숫자로 내 세울 만한 것은 아니다. 모하비는 호불호가 뚜렷하고 대상이 분명한 차다. 따라서 새로운 수요층을 끌어내기가 쉽지 않다. 사전 계약 대수도 8년이라는 긴 세월이 만들어 준 대체 수요로 보면된다. 확실하게 달라진 점이 없다는 것이 아쉬운 이유다.

정통 SUV를 지향하는 모하비의 성격이 예전보다 온순해지면서 정체성을 잃고 있는 것은 아닌지도 우려스럽다. 따라서 오프로드 성능을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 눈 길, 자갈 길, 진흙 길 등 어떤 지형에도 대응이 가능한 드라이브 모드 선택 기능 정도는 갖춰야 한다. 기아차가 어렵게 마련한 오프로드를 달렸는데도 아무런 여운이 남아있지 않는 이유다.

더 뉴 모하비의 가격은 개별소비세 인하분을 반영해 노블레스 4025만 원, VIP 4251만 원, 프레지던트 4680만 원이다. VIP 트림은 39만 원을 더 들이면 사륜구동을 선택할 수 있고 프레지던트는 상시 사륜구동이 적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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