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리콜은 왜 99.9%가 '자발적'인가

  • 입력 2017.05.29 10:53
  • 수정 2017.05.29 11:38
  • 기자명 김흥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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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1) 국토교통부는 지난 12일, 현대ㆍ기아차 12개 차종 23만 8000대를 강제 리콜했다. 앞서 현대차는 국토부의 리콜 권고에 대해 “진공파이프 손상이나 허브 너트의 풀림 같은 단순 이상은 안전에 영향을 주는 심각한 결함으로 볼 수 없다”며 이의를 제기했지만 청문회 결과, 강제 리콜이 결정됐다. 현대차가 국토부의 권고를 수용했으면 ‘자발적 리콜’이 될 수 있었던 사항이다.

사례 2) 2013년 처음 불거진 일본 다카타 에어백 결함 사태는 진행형이다. 전 세계에서 17명의 목숨을 앗아간 살인 에어백이 1600만여 대의 자동차에 장착됐고 그만큼의 리콜로 이어졌다. 이 가운데 18개 업체가 문제가 된 다카타 에어백 사용 자동차 35만 여대를 국내에서 팔았다.

그러나 18만 3000대를 제외한 나머지 16만 5000대의 리콜은 이뤄지지 않았다. 한국 GM과 GM코리아, 메르세데스 벤츠 등 3개사가 자국 내에서 아직 리콜하지 않고 있다는 주장하자 국토부가 정상을 참작해 강제 리콜 대신 ‘자발적 리콜’을 촉구하는 중이다. 다카타 에어백에 중대한 결함이 있다는 사실이 전 세계 유관 기관에서 명백하게 입증됐는데도 국토부는 뜬금없는 배려를 아끼지 않고 있다.

 

자발적 리콜의 사전적 의미

자동차안전연구원 리콜센터에 따르면 통계가 시작된 1992년 이후 2017년 5월 현재까지의 리콜 누적 대수는 수입차 포함, 3499개 모델 2100여만 대다. 국산차는 1000만대, 수입차는 1030만대다. 올해 들어서도 139건, 347개 모델, 66만대가 리콜하고 있다. 이 가운데 강제 리콜은 단 1건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자발적 리콜로 발표되고 분류돼 있다. 제작사가 엄청난 부담을 감수하면서도 99.9%의 리콜을 자발적으로 시행했다는 얘기다. 

자동차 리콜은 배출가스 등 환경 분야를 제외하고 국토교통부 산하 기관인 자동차안전연구원이 총괄한다. 안전기준 부적합 여부를 가리고 안전운행에 지장을 줄 수 있다고 판단되는 결함이 다수의 차에서 발생할 우려가 있는 차를 대상으로 한다. 소비자와 시민단체의 제작결함 신고, 언론보도를 통해 결함 정보를 얻으면 조사를 하고 이를 토대로 제작사의 자발적 리콜을 유도한다.

‘자발적’의 사전적 의미는 ‘남이 시키거나 요청하지 아니하여도 자기 스스로 나아가 행하는 것’이다. 정부가 피해 당사자인 소비자의 신고와 이를 보도하는 언론 정보를 토대로 국가 예산을 들여 조사를 벌이는 모든 과정을 주도하고도 ‘리콜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권고해 제작사 스스로, 알아서 하는 자발적 리콜로 둔갑시켜 주는 것이다. 

 

'자발적 리콜' 이 용어를 폐지하라

자발적 리콜은 제작사의 책임 회피가 정당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용어 폐지를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1991년 자동차 리콜 제도가 처음 도입된 이후 5월 현대ㆍ기아차의 ’강제 리콜’이 사상 처음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국민 안전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고 판단한 사안을 놓고 이해 당사자인 제작사에 리콜 수용 여부를 권고하는 소극적 태도가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는 것 아닌가. 이상이 있으면 정부가 즉각 리콜하면 될 일이다. 그런 판단능력도 없어 제작사와 리콜 수용 여부를 협의한다는 것 자체가 불쾌하다. 

다카타 에어백도 같은 맥락에서 지적을 받아야 한다. 에어백이 팽창하면서 발생한 파편에 17명이 목숨을 잃는 일이 발생했고 분명한 결함으로 1000만대가 넘는 자동차 리콜이 시행되고 있는데, 원인과 해결에 대한 자체 분석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3개 업체의 주장을 친절하게 받아들여 우리 정부는 리콜을 유보해줬다.

 

같은 에어백을 사용한 15개 업체 18만여 대는 역시 ‘자발적 리콜’을 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국토부는 다른 나라에서도 리콜을 하지 않고 있다며 자발적 리콜을 촉구했다고 한다. 강제 리콜을 명령한 현대차의 진공 파이프 손상이나 너트 풀림 결함도 국내가 아닌 해외 리콜은 아직 사례가 없다. 너무 입맛대로 아닌가.

미국과 유럽 선진국의 교통안전 관련기관은 어느 곳도 자발적 리콜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리콜은 제작사에 일방 통보되고 발표된다. 나랏돈을 들여 밥상을 차려놓고 제작사가 ‘자발적’이라는 생색을 내지 않도록 리콜의 주도권을 정부가 가져와야만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국토부를 현기차 산하 기관으로 생각하는 국민 불신은 그래야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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