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채로 부숴야 관심, 한국형 레몬법에 거는 기대

  • 입력 2017.11.05 08:32
  • 기자명 오토헤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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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잦은 시동 꺼짐에도 적극적 대응을 하지 않았던 메르세데스 벤츠는 차주가 골프채로 차를 부수면서 주목을 끌자 교환을 약속했고 국토교통부도 결함 여부 조사 후 리콜 조치를 내렸다.

최근 가장 관심을 가졌던 자동차 관련 규정은 1975년 시행된 미국 레몬법의 한국형 레몬법이다. 신차를 구입하고 일정 기간 내에 같은 부위의 하자가 반복해서 발생하면 자동차를 교환하거나 환불해주는 규정이다. 

소비자 보호법 가운데 가장 후진적이고 낙후돼 불만이 가장 많은 부분을 법으로 규정한 제도여서 그만큼 관심이 많았다. 2019년 시행을 앞두고 있어 기대가 크지만 실효성과 지금의 상황에서 가능할 것인지를 놓고 논란이 여전하다. 

강제 이행규정, 또 자동차 관리법으로는 소비자에게 직접 적용하는데 한계가 있고 누가 어떻게 교환이나 환불에 대한 객관적이고 정확한 판단을 내릴 것인지도 논란이다. 수많은 자동차 관련 민원을 해결하고 소비자를 보호하고 배려하는 규정이 부족한 상황에서 한국형 레몬법은 분명 진일보한 정책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각종 규정을 만들면서 현실과 동떨어진 규정으로 도리어 시장을 어지럽히거나 없는 것보다 못한 규정이 많았고 선진국과 유사한, 제법 그럴듯하게 포장돼 있지만 실질적인 액션플랜이 없는, 형식만 갖춘 법도 많았다. 

따라서 이번 규정도 실질적인 후속 액션플랜이 없다면 수없이 사장되는 법 가운데 하나가 될 가능성이 크다. 여러 측면을 고려해야만 빛을 발할 수 있다고 보는 이유다. 우선 한국형 레몬법은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각종 자동차 관련 사건에서 소비자와 기업의 시각에 차이가 크다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

예를 들어 심야에 비가 오는 고속도로 1차선을 시속 100Km로 달리던 차량이 갑자기 시동이 꺼지는 결함이 발생했을 때, 안전조치를 하고 갓길로 피행을 했어도 2차 사고가 발생하면 사고의 직접 원인이 차량 결함인데도 운전 실수 또는 운전자의 과실로 결론이 날 수 있다. 

다행히 2차 사고로 피했다고 해도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판정을 내리기 어려운 구조고 자동차 메이커는 언제든지 시동이 꺼질 수 있는 만큼 정비센터서 수리를 받도록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이런 경우 과연 자동차를 교체하거나 환불하는 조치가 가능할까? 

누가 이것을 판정하고 강제적인 조치를 할 수 있을까? 과연 그러한 전문가 집단이 있고 정부가 나서서 강제 이행할 수 있는 조치가 이루어질까? 현재의 상태로는 법이 시행된다고 해도 모든 것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모든 문제가 소비자 중심인 미국에서는 가능하다. 

우선 징벌적 보상제가 제도적 기반을 받치고 있다. 의도적으로 결함을 숨기거나 소비자를 우롱하면 기업은 천문학적인 벌금과 소비자 보상금을 감수해야 한다. 메이커는 문제가 커지기 전에 소비자를 배려하고 해결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불편을 감수하고 있는 소비자를 위하여 정신적 그리고 시간적 보상도 소홀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우리는 신차에 계속 문제가 발생해도 보상은커녕 계속해서 정비센터의 수리를 받도록 유도하는 것이 최선의 조치다. 정신적 그리고 시간적 보상은 남의 얘기다.

정부가 소비자를 보호하려는 의지 그리고 논란이 발생했을 때 이를 바라보는 시각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신차가 갖고 있는 결함 등이 인터넷에서 난리가 나고 수많은 문제, 심지어 사고로 이어진 뒤에야 조사를 하고 질질 끄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다.

알아서 고치고 조치하라는 격이어서 소비자가 봉이 되고 마루타가 되고 있다. 우리는 징벌적 보상제가 아니라 보상적 보상제여서 바탕 자체가 달라 과연 법적 이행력이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 발생하고 실제로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메이커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매년 수백 건 이상의 자동차 관련 교환이나 환불 요청을 받고 있지만 실제로 이행되는 사례는 손으로 꼽을 만큼 드물다. 예전 광주에서 골프 채로 벤츠의 차체를 부수는, 그래서 언론 등에서 주목하고 이슈화가 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또 하나 문제가 발생하면 소비자가 자동차의 결함을 밝혀야 하는 구조도 바꿔야 한다. 비전문가가 전문성이 크게 요구되는 자동차의 문제점을 밝힌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자동차 급발진을 포함해 제조사와 의 분쟁에서 소비자가 늘 패소하는 이유다. 

병원에서 발생하는 의료사고의 이유를 피해자 가족이 밝혀내야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그래서 우리의 법을 ‘알아서 져주는 법’으로 자조한다. 자동차 급발진 등이 발생해도 메이커는 소극적으로 대처하고 같은 말을 반복하며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알아서 져주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런 경우 제조사와 소비자의 입장이 전혀 다르다. 자동차에 문제가 발생하면 제조사가 차량에 결함이 없다는 것을 밝혀야 한다. 따라서 재판 과정에서 소비자의 목소리에 자동차 메이커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소비자 배려가 부족하다고 보고 결과가 없어도 협상을 통해 보상을 받게 한다.

이러다 보니 같은 문제가 발생해도 메이커는 국내와 미국에서 각각 다르게 대처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법의 허점을 교묘하게 악용하는 일도 수없이 봐왔다. 법적 구조와 바탕 자체가 규제 일변도의 포지티브 정책으로 기반을 다지고 있고 고속 성장 위주로 제작자와 판매자 중심의 시스템이 가져온 후유증이다. 

그래도 희망을 가져본다. 한국형 레몬법은 자동차 소비자를 우선하는 첫 단추로 잘 다듬어 나간다면 좋은 사례가 쌓이고 근본 자체도 바뀔 것이라 확신한다. 제대로 된 후속 조치를 기대하면서 열심히 후원하자. <김필수=대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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