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토스카 '말리부'

엇 박자 성능, 핸들링과 정숙성은 동급 최고

  • 입력 2011.10.23 12:25
  • 기자명 김흥식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부산] 한국지엠이 지엠대우, 대우자판을 떼어내고 옛 '대우'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는데 성공했다.

2011년 한국지엠은 쉐보레 브랜드의 올란도, 크루즈, 아베오 등을 연이어 출시하며 국내 완성차 업체 가운데 가장 역동적인 한 해를 보내고 있다.

지난 4일 출시돼 18일 양산이 시작됐고 21일 미디어 시승회를 거쳐 다음 달 본격 판매를 시작하는 말리부는 쉐보레 브랜드 100년 역사의 정점을 찍는 한편, 한국지엠의 성공적인 변신을 자축하고 마감하는 기념비적 모델이기도 하다.

한국이 말리부의 세계 최초 생산과 판매가 이뤄지는 시장인 만큼 한국지엠은 국내 자동차 담당 기자들을 초청한 세계 최초의 미디어 시승회에 많은 의미를 부여했다.

시승 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마이크 아카몬 사장은 "말리부는 쉐보레 100주년을 기념하는 대표 모델"이라며 "7세대를 거치며 쉐보레 최고의 역사와 전통을 갖고 있는 말리부의 월등한 품질과 상품성을 경험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또한, 안쿠라 오쿠시 부사장은 말리부의 최대 강점을 "뛰어난 외관 디자인과 핸들링, 정숙성과 첨단 기술 4가지"로 정리해줬다.

중요한 점은 이날 기자 간담회가 시승 후에 이뤄졌다는 점이다.

마이크 아카몬 사장과 한국지엠 관계자들이 설명하는 말리부의 강점을 기자는 어느 정도 공감했을까.

▲역동적이고 균형적인 디자인=쉐보레를 대표하는 스포츠 카 카마로와 콜벳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말리부의 디자인이 국내 중형세단 가운데 가장 뛰어난 균형미를 갖췄다는 점에 공감한다.

전면부는 크루즈와 아베오로 익숙해진 분할 라디에이터 그릴(듀얼 포트 그릴)과 자동으로 빛의 높 낮이를 조절하는 기능이 적용된 앞쪽 램프, 큼직한 안개등이 적용됐고 간결해진 측면부는 깔끔하고 시원스럽다.

카마로와 유사한 뒷쪽 램프의 디자인과 천정에서 화물칸으로 이어지는 매끈한 선이 전체적으로 역할에 따라 잘 배분된 각 부문의 크기와 어울려 무뚝뚝하지만 믿음직스럽다.

무엇보다 현대차 쏘나타(1835mm)보다 넓은 전폭(1855mm)을 확보해 앞쪽에서 보이는 당당함이 보기좋다.

실내 인테리어의 디자인은 훌륭하지만 각종 기기의 조작 편의성은 상당한 적응 능력이 필요할 정도로 불편한 점이 많다.

각종 버튼류의 기본 조명 색상은 오션블루, 쉽게 말해 바다색을 적용해 차분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음향, 공조 장치를 작동할 수 있는 버튼들을 가지수를 늘려 산만하게 배치한 센터페시아와 대시보드의 복잡한 구조는 청소나 관리가 매우 힘들 정도로 혼란스럽다.

특히 수동 변속 기어를 변속기 손잡이의 윗 부분에 있는 버튼으로 작동하도록 만들어 이에 적응하기보다는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 나을 듯 싶다.

의자를 감싼 소재의 감촉, 자리에 앉았을 때의 느낌과 안정감은 매우 탁월하다.

'오스카(인체모형의 3차원 인형)'를 통해 운전자에게 가장 적합한 유형의 의자를 만들어 냈고 최대 12개까지 가능한 위치 설정 기능까지 더해져 같은 배기량의 승용차 가운데 가장 안락한 자세를 유지할 수 있다.

뒷 쪽을 수납공간으로 만들고 가벼운 접촉에도 빠르게 반응하는 버튼 등 내비게이션 주변의 설정도 재미있다.

실내 공간은 앞 쪽 열은 비교적 여유롭지만 뒷 열 공간은 그렇지 못하다.

같은 배기량 가운데 가장 긴 차체 길이를 확보했지만 실내 공간의 크기를 좌우하는 축거가 2735mm로 가장 짧다는 것이 아쉬운 이유다.

▲핸들링과 정숙성, 그리고 첨단 사양=시승차는 2.0리터 DOHC 에코텍 엔진과 6단 자동변속기를 장착, 최고출력 141마력, 최대토크는 18.8kgㆍm의 제원을 갖고 있다.

창원중앙역에서 부산 해운대까지, 주행 구간이 비교적 짧은데다 운전자 교대까지 이뤄져 여유있는 시승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짧은 구간에서 경험한 말리부의 조향능력은 기대 이상이었다.

급격하게 굽은 구간을 빠르게 통과해도 하체를 잡아주는 근력이 매우 믿음직스러웠고 복원력도 뛰어났다.

급회전 구간 등에서 차체를 정교하게 통제하는 ESC와 속도에 따라 엔진의 구동력을 통제하는 TSC, 그리고 EBD-ABS와 BAS 등 이제 일반화된 첨단장치가 적용됐지만 말리부는 더 유기적인 조화로 최적의 성능을 발휘할 수 있는 접점을 찾은 듯하다.

말리부는 앞 쪽에 맥퍼슨 스트럿, 뒤 쪽에 4-링크 서스펜션을 적용했다.

외부 소음이 실내로 들어오는 것을 효율적으로 차단해 정숙성 역시 만족한 수준이다.

그러나 여러가지 첨단 사양으로 발휘되는 다양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말리부의 달리는 능력은 이전의 매그너스와 토스카에서 지적돼왔던 약점을 극복하지 못했다.

 

▲말리부, 심장이 없다=시승회에 참가했던 한 기자는 먼저 운전을 한 후 "말리부는 심장이 없는 차"라고 악평을 했다.

가속페달을 밟아도 반응이 느리고 엔진 회전수(rpm)의 상승에도 속도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차라지 밀고 다니는 게 나을 정도"라고 까지 했다.

운전 경험이 어느 정도 되면 가속페달을 밟았을 때 엔진회전수의 상승 정도와 속도를 예측하는 일이 가능해진다.

그러나 말리부는 조금만 급하게 가속을 해도 엔진회전수가 6000rpm 이상 급상승 한 후 급격하게 떨어지면서 추월이 필요한 순간과 같이 제 때 속도를 내는 일이 어려웠다.

이런 현상을 말하는 킥 다운은 일반적인 도로는 물론 낮은 경사로에서도 여지없이 반복됐다.

시승 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도 "가속을 해도 반응이 없다"는 지적이 나왔고 "이런 의견이 오늘 시승을 했던 기자들의 지배적인 평가"라며 어떻게 생각하는냐는 질문이 나왔다.

손동연 부사장은 이에 대해 "기존 경쟁차와 설정이 다르다. 0.2초 가량 반응이 늦은 것이 사실인데 이는 서구적 경향이며 국내 소비자들도 이러한 설정에 익숙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태완 부사장은 "선입견 때문인 것 같은데 이런 지적이 지배적이라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다"며 자신은 그런 문제점을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그런 통상적인 답변만으로는 말리부의 더디고 무른 가속 반응에 대한 아쉬움과 지적이 쉽게 사그러지지 않을 정도로 심각하다.

특히 말리부의 주 타깃이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이라는 한국지엠의 설명이 사실이라면 누구보다 자동차 상식이 풍부한 이들에게 지금까지 익숙해지고 일반화된 동력성능의 감각을 포기하라는 것과 같다.

한국지엠 관계자는 계속되는 기자들의 지적에 "반응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며 "좀 더 전향적인 검토를 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한 발 물러섰다.

한국지엠은 기억하기 싫겠지만 매그너스와 토스카 역시 6기통 엔진의 장점을 살리지 못하고 동력성능의 열세로 시장에서 특별한 주목을 받지 못했다.

말리부가 또 하나의 토스카로 남지 않기 위해서는 한국적인, 국내 시장에 익숙한 동력성능을 발휘해야 한다. [오토헤럴드 김흥식 기자 reporter@autoherald.co.kr]

저작권자 © 오토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