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식 칼럼] "트럼프가 전기차를 죽이려 하고 있다"

  • 입력 2023.09.12 12:13
  • 수정 2023.09.12 12:21
  • 기자명 김흥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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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2017.01~2021.01), 그는 바이든 정부의 전기차 정책을 '미친 짓'이라며 비난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2017.01~2021.01), 그는 바이든 정부의 전기차 정책을 '미친 짓'이라며 비난하고 있다.

[오토헤럴드=김흥식 기자] 전기차 역사는 127년 전 시작했다. 1896년 벨기에 자동차광 까뮈 제나티가 시속 100km를 돌파한 탄환 모양 전기차를 원조로 본다. 발명가 구스타브 트루베가 5년 앞선 1881년 삼륜 전기차를 처음 발명했지만 전시로 끝냈다. 

전기차는 적지 않은 힘을 들여 크랭크 핸들을 사용하는 패트롤식 내연기관차 시동 장치와 다르게 스위치 하나로 움직이는 편의성 덕분에 유럽과 미국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내연기관 발전과 턴키 스타터 방식 시동키가 나오면서 빠르게 사라졌다.

전기차가 다시 등장한 건 100년 후인 1996년이다. 미국 지엠(GM)이 캘리포니아주 환경 규제 대응을 위해 'EV1'을 만들었다. 순수 전기차 EV1은 2인승 쿠페로 납축전지로 시작해 니켈수소전지로 이어져 길게는 169km를 달렸다.

리스로 제법 팔려나간 EV1은 어느 날 갑작스럽게 사라진다. 생산 중단에 그치지 않고 팔려 나간 리스를 회수해 폐기까지 하는 등 극단적으로 흔적을 지웠다. 대형 정유사와 엔진 오일 기업의 로비로 환경규제가 철회됐기 때문이라는 의혹, 성급한 투자로 막대한 손실을 본 지엠의 결단이라는 등 흉흉한 소문만 남겼다.

크리스 페인이 연출한 다큐멘터리 ‘누가 전기차를 죽였나(Who Killed the Electric Car. 1966년)’는 EV1의 갑작스러운 퇴출 의혹을 다룬다. 페인은 5년 후인 2011년 ‘전기차의 복수(Revenge of the Electric Car)’를 통해 테슬라를 시작으로 한 전기차의 부활을 예고했다.

그리고 이제 전기차는 자동차 산업의 주류가 됐다. 정점을 찍었고 정체기에 접어들었다는 비관적 전망도 있지만 대부분 자동차 업체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이미 건넜다. 20여 년 전, 전기차를 왜 죽였는지 입을 다물고 있는 지엠, 그리고 포드와 스텔란티스, 현대차, 폭스바겐, BMW, 벤츠 등 대부분 완성차가 전동화 전환에 천문학적 규모의 투자를 시작했다.

컨설팅 전문기업 알릭스파트너(AlixPartners)가 지난 2021년 전망한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의 전기차(배터리 포함) 총 투자 규모는 5150억 달러(약 683조 원)에 달했다. 그리고 불과 2년 만에 미국 전기차 시장조사 업체인 아틀라스 퍼블릭 폴리시(Atlas Public Policy)는 2030년까지 8600억 달러(1140조 원)에 이를 것이라는 분석 자료를 내놨다.

현대차그룹은 2030년까지 24조 원을 쏟아부을 계획이다. 국내, 북미, 유럽 등 주요 거점에 전기차 전용 공장을 세우기 시작했고 배터리 내재화, 광물 확보를 위한 협력에도 적극 나섰다. 지엠은 2025년까지 350억 달러(약 46조 원), 포드는 2026년까지 500억 달러(약 66조 원), 폭스바겐은 무려 1930억 달러(약 256조 원)의 투자 계획을 밝혔다.

전기차를 회의적으로 본 도요타도 2030년까지 700억 달러(약 92조 원)를 투자한다. 이들 업체가 밝힌 투자액 상당수는 이미 비용으로 지출됐다. 계획과 투자를 철회하거나 포기하기 어려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셈이다.

이런 가운데 누가 또 전기차를 죽이려 하고 있다. 2024년 미국 대선에 나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다. 트럼프는 조 바이든 지금 대통령의 전기차와 에너지 정책, 환경 규제 등을 지목해 엄청난 사기극이라고 주장한다. 

바이든의 전기차 정책으로 "중국이 미시간을 점령할 것이며 우리 자동차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될 것"이라며 "내연기관 모두를 전기차로 전환하려는 바이든의 정책은 미친 짓"이라고 주장했다. 대선에서 승리하면 "이 미친 광기를 멈추겠다"라고도 했다.  

트럼프는 또, 세계 어느 나라보다 풍부한 미국의 화석연료 자원 생산을 늘리기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바이든 정부가 지난 4월 발표한 내연기관차의 단계적 폐기 및 연비 기준이 11만 7000명의 일자리를 없애 것이라며 규제 폐기도 약속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해 자국 기업의 리셔어링, 해외 기업의 투자를 끌어내고 전기차를 대중화했다. 자동차 제조사들은 바이든 정부 정책에 맞춰 천문학적 비용을 들여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시작했다.

하지만 전기차를 사기로 보는 트럼프가 만약 다음 대선에서 당선되면 이 모든 것이 낭패가 될 수 있다. 표를 노린 전략으로 보는 관측이 있지만 트럼프에 동조하는 언론과 기관, 그리고 유권자들이 전기차의 부정적 측면을 강조하며 동조하고 있다. 자동차 제조사들을 곤혹스럽게 하는 부분이다. 

물론 미국이 전기차 패권을 쥐고 있지는 않다. 내연기관차와 다르지 않게 전기차 역시 중국, 유럽에 이은 세계 3위 시장이다. 그러나 독자 브랜드 기세가 등등해진 중국을 빼면 유럽에 이은 2위 시장이다. 그래서 많은 자동차 제조사, 배터리 등 전기차 관련 기업이 미국 정부의 정책을 믿고 엄청난 투자를 했다. 

CNN 여론 조사에서 바이든과 트럼프 호감도는 둘 다 비슷한 35%대에 불과하다. 또 다른 조사에서 바이든과 트럼프 지지율은 40.6%대 40.3%로 차이가 없다. 박빙의 승부를 바라보고 있는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의 심정은 아마 타들어 가고 있을지 모른다. 트럼프가 대선에서 승리하면 전기차는 또 죽을 운명에 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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